한국사 백제건국과 왕의 업적과 순서계보 문화사

안녕하세요 DAY~ 투데이입니다.

흐음!
!
오늘은 즐거운 화요일입니다.

어제보다 춥지 않아요. 겨울은 정말 싫어요. 이불 밖에 나가기 싫어서요. 오늘은 여러분과 한국사 백제편을 투고하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고대국가의 성립부터 시작해서 백제 역대 왕과 고구려, 신라의 전쟁과 영토확장 등에 대해서 알아봐야 합니다.

5C 고구려가 성행하는 시기라고 지도만 봐도 느낌이 있어야겠죠?

흐름잡는4C특징백제가선율령반포,영토확장으로강대국대열에등극

5C 특징 고구려가 율령 반보, 영토 확장을 하다.

광개토대왕 장수왕 때

6C 특징 신라가 율령반포, 관등, 관복정립불교의 수용을 통해 기반을 다진 후 영토확장개시진흥왕 때

7C 특징 삼국통일신라

백제 건국설화(온조설화) 동명성왕이 졸본으로 정착하여 졸본여왕의 둘째 딸과 결혼하여 두 아들을 낳았는데, 형은 비류이고 동생은 온조(溫祖)라고 이름 붙였다.

이후 동명성왕이 고구려를 건국하면서 비류와 온조는 왕위에 오르는 가장 유력한 순위에 있었다.

그러나 어느 날 비류와 온조를 얻기 전에 동명성왕과 북부 여의 예씨 사이에서 태어난 백합이 고구려를 방문하자 동명성왕이 반겼다.

게다가 동명성왕은 장남 유리를 세자로 임명하자 비룡과 온조 형제는 후일이 두려워 남쪽으로 내려와 새 땅을 찾아 나서게 되었다.

백제 건국설화는 삼국시대 고대국가 백제의 건국에 관해 전하고자 하는 설화입니다.

현재까지는 백제 건국 이야기는 모두 3가지가 있는데, 삼국사기에 전해지는 설화는 온조설화와 비류설화입니다.

고대국가의 특징은 반드시 기억해주세요.왜 옥저, 이 예술은 고대국가를 성립시키지 않았을까요? 바로 왕권을 강화하지는 못했습니다.

왕권을 강화하기 위해서는 부자상속도 필요한 부분이고 율령을 반포하여 법체계를 갖추어야 왕의 위엄과 고대국가로서의 성립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이제 어떤 느낌으로 고대국가/삼국시대로 접근해야 하는지 알 것 같습니다.

그리고 백제왕이 어떤 업적을 냈고 고구려, 신라와 어떤 전쟁을 치르면서 어떤 위험에 빠졌는지 함께 비교해 보면 삼국시대가 더 재미있고 이해도 빠를 것 같습니다.

백제왕계보(故 이왕 근침아 비유왕 문동무성 무자비)

  • 잉어왕(234~286) – 왕위 형제세습, 16관 등 6좌평, 복색, 율령반포 등 국가기반 확립 – 한강유역 통합, 목지국 복속
  • 근초고왕(346~375) 마한정복(369), 목라근자의 가야진출, 고구려 공격으로 고국원왕 전사(371) – 해상세력 형성(요서, 산동, 규슈) – 왕위의 부자상속 – 서기편찬 – 근구수왕란시대 7준비를 왜에 하사
  • 침류왕(384~385) – 동진교류 – 불교수용과 공인(마라난타)
  • 비유왕(427~455) – 신라의 누르지왕과 나제동맹(433)
  • 개로왕(455~475) – 북위에 국서 보내기 – 고구려 장수왕에게 전사
  • 문주왕(475~477) – 웅진천도 – 왕권 약화와 귀족세력 강화
  • 동성왕(479~501) – 신라 증지왕과 결혼동맹으로 나제동맹 강화
  • 무령왕(501~523)-22 담로제로 지방통제강화-무령왕릉 벽돌식 무덤에서 남조(량)와 교류하였음을 알 수 있다.

  • 성왕(523~554) – 사비천도, 국호를 남부여행으로 고치다 – 22부 관서정비 5부 5방 – 불교장려(겸익) – 일본에 불교를 전래(노리사치계) – 일시적 한강유역 탈환하였으나 신라진흥왕 배신.사망으로 나제 동맹 결렬

*의자왕 – 해동증자 – 당항성과 대야성 탈환 – 향략정치 – 황산벌 전투

왕의 계보를 먼저 암기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나는 “어차피 근침아 비유왕 문동무송 무자비하다”고 암기했습니다.

족보에서 시험에 항상 출제되는 아이들만 출제됩니다.

4C기에 가장 중요한 것이 바로 고 이왕 근초고왕, 심류왕이라는 것은 다들 아실 겁니다.

잉어왕이 율령 반포하여 왕위 형제계승을 시작했습니다.

그런 기반으로 강력한 왕권으로 영토 확장을 해 나갔습니다.

백제 문화

정림사지 5층석탑 정림사는 백제성왕이 538년 사비성(부여)으로 도읍을 옮기면서 건축한 백제의 대표적인 사찰로 왕궁 남쪽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정림사지 한가운데 위치한 정림사지 5층석탑은 높이 8.33미터의 결코 작지 않은 탑으로 탑신부에는 모서리마다 기둥을 세우고 민류기법을 적용하여 상승감을 보이는 등 장중하면서도 부드럽고 우아하며 세련된 백제의 정취를 느낄 수 있는 백제계 석탑의 완성된 모습을 보여줍니다.

금동대향로 백제금동대향로(국보 제287호)는 1993년 부여 능산리사지 공방터 목곽수조에서 발견되었습니다.

이 향로는 높이 61.8cm, 무게 11.85kg의 대작으로 한 마리의 용이 고개를 들어 입으로 향로 본체의 하부를 물고 있는 받침대와 양감 있고 사실적인 연잎으로 표현된 향로 본체, 그리고 중첩된 산악으로 묘사된 뚜껑의 세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사택지적비 부여 부소산성에서 발견된 비석으로 백제 의자왕 14년(654년)에 만들어진 것으로 파악되고 있으며, 비문은 중국 육조시대의 사륙병(몸으로 그 내용은 사택지적이 금당을 짓고 탑을 쌓았다는 등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당시의 비문양식과 글씨체 등을 알 수 있는 좋은 자료입니다.

백제 건국에 대한 정리

이렇게 한국사 백제건국과 왕의 업적과 순서계보 문화사에 대해 알아보았습니다.

제가 전에 시험을 준비하면서 썼던 노트를 버려서 내용이 좀 미흡하네요. 다음 신라는 좀 더 자세하고 알찬 포스팅을 준비하도록 하겠습니다.

안녕히 계십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