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제 왕의 계보, 왕조 순서의 주요 사실 정리!
안녕하세요!
처음뵙겠습니다 🙂
오늘은 한국의 고대국가 중 하나인 백제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백제는 고구려, 신라와 함께 삼국시대를 보낸 나라로 부여&고구려 계통의 온조왕이 세운 나라입니다.
마한의 54개 연맹이 합쳐져 연맹 왕국으로 시작되었습니다.
그 후 제31대 의자왕까지 매우 많은 왕을 배출한 나라입니다.
오늘은 1부로 1대 온조왕부터 14대 근수구왕(근초고왕의 아들)까지의 계보와 주요 사건사고들을 간략히 정리해 보겠습니다.
도움이 되셨다면 2부도 기대해주세요!
그러면 백제왕 순서의 투고를 시작하겠습니다.
백제왕계보 1대~14대 백제 1대 왕 온조왕(bc18~28년 44년 집권) 온조왕은 백제를 건국한 사람으로 비류와 함께 고구려에서 나와 남게 되었습니다.
이후 마한 땅에 도착하여 마한은 북쪽 영토를 내주고 그 영토를 다스리도록 하였습니다.
이후 세력을 모아 마한을 통일하고 전국을 4부로 나누어 관리하며 국가의 기초를 닦았습니다.
백제 제2대 왕 달왕(28년~77년 49년 집권) 달왕은 온조왕의 장남으로 멸망하고 있는 마한을 흡수했습니다.
이후 북쪽의 함박갈침입을 모두 방어하고 영토확장 및 신라와의 국경분쟁에 주력하게 되었습니다.
이 시기에 좌&우편향제도인 2인 협의체제가 성립되면서 나라를 달리하게 되었고, 쌀농사가 대대적으로 보급되어 영토와 생활에 큰 번영을 누렸던 시기입니다.
백제 3대 왕 갈왕(77년~128년 51년 집권) 갈왕은 친신라적 태도를 취한 왕으로, 갈갈과 전투 중인 신라에 구원병을 보내는 등 친밀한 관계로 발전하였다.
하지만 재위 기간 중 크고 작은 천재지변이 끊임없이 일어나 나라가 파탄 직전에 이르러 6년간 왕자를 빼앗겼으나 장남 켈왕의 도움으로 다시 왕좌를 찾게 되었다.
백제 4대 왕 개루왕(128년~166년 38년 집권) 개루왕은 갈왕의 장남으로서 갈왕과 달리 즉위 후 한번도 신라와 사신을 주고받는 등의 친선행위를 하지 않았다.
또한 신라의 반역자 길성이 백제로 도망치는 일이 있었으나 신라의 환송 요구로 개루왕은 이를 거절하여 결국 전투까지 일어나게 되었다.
개루왕은 신라의 침략을 잘 방어했고 신라군은 이에 한발 물러서는 태도를 취했다.
또한 녹슬기를 막기 위해 북쪽에 북한산성을 쌓기도 하였다.
백제 5대 왕 초고왕(166년~214년 48년 집권) 개루왕의 아들이자 신라와의 관계는 계속 악화되어 끊임없는 전투를 벌이게 되었다.
이 과정에서 끊임없는 자연재해와 메뚜기떼의 출현으로 나라의 혼란이 많았던 시기이다.
백제 6대 왕 구스왕(214년~234년 20년 집권) 구스왕은 초고왕의 장남으로 키가 2미터가 넘는 장신으로 유명합니다.
외모도 정감이 넘쳐서 백성들과 신하들에게 인기가 많은 임금이었습니다.
신라와의 전쟁은 끊이지 않고 봉산 전투에서 대패한 뒤 신라와의 전쟁은 더 이상 진행되지 않습니다.
재위 기간에는 마찬가지로 전염병, 홍수 등의 천재지변이 계속되었는데요? 이쯤 되면 백제에 뭔가 끼지 않았나 싶을 정도의 의심이 드네요. 또한 이 시기에도 함박갈족의 침략이 끊이지 않고 있었습니다.
백제 7대 왕 사방왕(234년~234년 5개월 집권) 사방왕은 구스왕의 장남으로 어린 나이에 집권하게 되었으나 어린 연령이 약한 왕권으로 인해 난에 의해 폐위되게 된다.
백제 8대 왕 잉어왕(234년~286년 집권) 사반왕을 폐위시키고 직접 왕이 된 인물로 신라에 강경책을, 영락갈에는 회유책을 써서 다시 신라와도 친해진다.
이 시기에 북위와도 한 차례 전쟁을 벌여 중국의 낙랑을 침범하는 등 백제의 영토 확장에 큰 역할을 했다.
또 6관 16품제를 도입해 서열을 정리하고 법제도를 제정해 관리 기강을 다졌다.
이는 중앙집권체제의 시작이 됐다는 평가가 있다.
백제 제9대 왕 책계왕(286년~298년 11년 집권) 책계왕은 고이왕의 아들로 중국 5호 16국 시대에 영토 확장에 주력하였으며, 이때 낙랑과 맥족의 침입으로 적변에서 사살되었다.
백제 10대 왕분서왕(298년~304년 6년 집권) 책계왕의 장남으로 이 역시 백제의 영토 확장에 힘썼다.
책계왕 때 낙랑에 침입하여 주요 지역을 빼앗았고, 이에 낙랑과는 적대적인 관계로 남게 되었다.
훗날 낙랑이 보낸 자객에 의해 살해되고 만다.
백제 제11대 왕비류왕(304년~344년 40년 집권) 분서왕 자녀들의 나이가 어려 한성을 장악하고 왕위에 오른 인물이다.
이때 분서왕의 아들을 비롯한 많은 신하들이 대륙백제로 옮겨갔고, 한반도의 백제는 기존의 백제와 다른 왕조를 구사하여 2왕조 시대를 맞이한다.
비룡왕 재위 기간 동안 천재지변이 끊이지 않아 친박, 친박, 친박, 친박, 고구려 정책을 펴 신라를 함께 압박하였다.
백제 12대 왕인 계왕(344년~346년 2년 집권) 분서왕의 아들로 비룡왕이 죽은 후 스스로를 백제의 왕임을 공포하고 한반도 백제로 내려왔으나 비룡왕의 둘째 아들인 근초고왕에게 패배하였다.
백제 제13대 임금인 근초고왕(346년~375년 29년 집권), 근초고왕은 백제의 최대 전성기를 이끈 인물로 비류왕의 둘째 아들이다.
대륙백제 계왕과 전투에서 승리해 백제를 통일했고 고구려를 침범해 고국원왕의 목을 베기도 했다.
또한 대륙 백제의 영토 확장에도 힘썼기 때문에 넓은 영토를 확보하고 스스로를 황제라 칭하였다.
백제 제14대 왕 궁구수왕(375년-384년 8년 집권) 군구수왕은 군초고왕의 아들로 고구려와의 전투를 지휘하고 고국 원왕의 목을 직접 베인 인물이다.
여기에 왕까지 되었으나 지병이 많아 8년의 짧은 집권 후에 죽었고, 본인은 대륙 백제를 통치하고 외척에게 한반도 백제를 맡겨 통치하게 하였다.
이때도 백제에는 끊임없는 전염병, 가뭄, 메뚜기떼 등의 천재지변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했다.
대륙백제(왼쪽), 한반도백제(중앙), 왜백제(오) #백제왕계보 이야기를 마치고 백제는 삼국시대 삼국 중 가장 먼저 전성기를 맞은 나라입니다.
법제도 정리와 불교라는 종교를 빠르게 받아들여 왕권을 강화한 것이 큰 이유 중 하나입니다.
많은 중앙집권체제 국가들의 특징이니까요.
또 나라의 위치가 한강 근처라는 점도 빼놓을 수 없는데요. 도성을 한강이 흐르는 한성으로 정하고 비옥한 땅에서 물과 곡식을 원활하게 수급할 수 있다는 점이 가장 큰 이유라고 할 수 있습니다.
또 많은 분들이 모르시는 대륙백제와 어떻게 백제의 사실도 알게 되셨나요?
중국 역사책에 나오는 내용이라고 하니 따로 공부해서 알아보는 시간을 갖는 것이 좋습니다.